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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anuary 19, 2012

imperial japan policy as wore White cloths ethnic cleansing 白衣民族抹殺政策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Mlgr&articleno=7783484&_bloghome_menu=recenttext#ajax_history_home


discovered the photo in 1930 shown the policy that annihilating white coat ethnic in  colonial rule era (JoongAng Ilbo)

植民支配時代の白衣民族抹殺政策示す1930年代の写真を発見(中央日報)

「白衣退散」「色服奨励」
stop wearing white cloth, let's wear colored cloth
「백의도주」 「색옷장려」



日本式とこや 皇軍大歓迎!親日女子理髪
japanese style barber
welcome the soldiers of Imperial Army! pro-Japanese woman services barber.
http://sakuramochi-jp.blogspot.com/2011/12/japanese-style-barber.html


植民支配時代の白衣民族抹殺政策示す1930年代の写真を発見
식민 지배 시대의 백의민족말살 정책 가리키는 1930년대의 사진을 발견(중앙일보)

 日本による植民支配時代(1910~1945)、韓民族に白い服を着せないためのキャンペーンが繰り広げられていたことを示す写真が公開された。

色付きの服を着るよう強いて「白衣民族」の精気を抹殺しようとする政策が、写真を通じて確認されたのは初めて。写真研究家・鄭成吉(チョン・ソンギル、65)氏は、9日「釜山東莱(プサン・トンレ)地域で1932年ごろ行われた『白い服を脱いで、色付きの服を着よう』というスローガンのキャンペーンの写真を発見した」と伝えた。

写真は、日本人や親日派、動員された学生とみられる数十人が、「白衣退散」、「色服奨励」(白い服を脱ぎ、色付きの服を着るよう勧めよう、との意)とのスローガンが記されたものを掲げて、記念撮影したもの。また、後ろには「色服奨励」と記した旗が見える。

約20年間、朝鮮(1392~1910)末期の写真を収集し「写真で見た韓国100年史」を出版した鄭氏は「様々な情況・証言から考えて、この写真は、白衣民族の象徴である白い服の代わりに、色付きの服を着せるため行った大々的なキャンペーンの風景」だと説明した。鄭氏は7~8年前ごろ、名古屋の古本屋で、韓国関連の写真がたくさん掲載されている「産業奨励」という本の中から、この写真とともに約200枚の写真を撮影した。
宋義鎬(ソン・ウィホ)記者 <yeeho@joongang.co.kr>


Found a photo of colonial rule era in 1930s shown that policy to kill white ethnic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era (1910-1945), photo published that shown that the campaign for not dressed white cloths had been engaged to  Korean ethnic.

Policy that tried to kill the korean animal spirits of "white race" , by forced to wear colored clothes,it is confirmed for the first time through photography. photo researcher (Jeong Songiru, 65) said that he discovered the photo of campaign slogan which was "take off your white, get to wear colored clothes"
held around the year 1932 in the region of Dongnae Busan" .

Photo, a few ten people seen as students,pro-Japanese and Japanese, who had been mobilized, raised the slogan that of "Dispel white coat", "encouraged colors clothes " (meaning that take off the white clothes, to wear colored clothes), what had been written, taken the picture. In addition, the flag on back wrote in "encouraging color clothes" can be seen.

About 20 years, Mr.Chung who is collecting photos of the late Chosun (1392 ~ 1910),published " Korean 100 years history from seeing in the pictures", he explained that "from the testimony and difference of circumstances, this photo is landscape of massive campaign that instead of a symbol of ethnic white coat, go to dress colored.
Mr. Cheng took about 200 photos with this photo around seven or eight years ago, in a secondhand bookstore in Nagoya, South Korea-related photos from the published book "encouraged industry"
<yeeho@joongang.co.kr> reporter  (Song Uiho)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653682&ctg=12
일제의 백의민족 말살 정책 "흰 옷 벗고 색깔 옷 입자"
[중앙일보] 입력 2005.08.09 20:11 / 수정 2005.08.10 05:59
1930년대 사진 발견
일제가 조직적으로 한민족이 흰 옷을 입지 못하도록 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사진이 공개됐다. 색깔 있는 옷 입기를 강요해 백의민족의 정기를 말살하는 정책이 사진으로 보여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연구가 정성길(65)씨는 "1932년 무렵 부산 동래 지역에서 '흰 옷을 벗고 색깔 있는 옷을 입자'는 구호가 선명한 캠페인 사진을 발견했다"고 9일 밝혔다. 사진은 일인들과 친일파, 동원된 학생 등으로 보이는 수십 명이 캠페인 구호인 '백의퇴산(白衣退散)' '색복장려(色服奬勵)(흰 옷을 물리치고 색깔 있는 옷을 입도록 장려하자)'라고 쓴 글을 앞세우고 기념촬영한 모습이다.

20여년간 구한말의 한국과 한국인 사진을 수집해 '사진으로 본 한국 100년사'란 책을 펴낸 정씨는 "여러 정황과 증언을 종합한 결과 이 사진은 일제가 때가 잘 묻는 흰 옷의 폐단 등을 내세워 백의민족의 상징인 흰 옷 대신 색깔 있는 옷을 입도록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정씨는 7~8년 전쯤 일본 나고야의 고서점에서 한국 관련 사진이 많이 실려 있는 '산업장려'란 책에서 이 사진과 함께 200여 장을 촬영했다.

대구=송의호 기자

http://www.hanbitkorea.com/technote7/board.php?board=hbboard&page=4&command=body&no=35


十月十日から四月末日まで
◎白衣不経済 色衣着用
◎喪主 當該邑面長 證明書 携帯
◎期間中 色衣着用

◇色衣着用

鳥致院市場
優良染料 販売店
雑貨商 南一洋行
主 李基完


From October 10 until the end of April
◎ its diseconomies to wear white clothes. wear colored clothes.
◎ chief mourner should bring with certification.
◎ during the event,wearing colored cloth

◇ wear colors clothing

Jochiwon city market

Excellent dye dealer,variety store
Namichi-Yoko
shop master Lee Kiwan

(mochi) well...its just adwars on newspaper....


백의 말살정책을 아십니까?

우리 민족은 유난히 흰색옷을 좋아하는 민족입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일제는 이 흰옷을 무언의 항거, 무언의 압력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백의말살정책을 실시하는데, 백색옷의 착용을 금하고, 색복을 입도록 강제했습니다. 명목상의 이유는 흰옷이 비경제적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심지어 시골장터의 입구마다 검정물을 담은 커다란 가마솥을 설치해 놓고, 장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흰 옷에 검정물을 끼얹었습니다.

떡 팔러 장에 갔다
베 옷에 먹물탕이라.
옷이야 검었지만
배알까지 검길쏘냐

일제 때 번진 남도아리랑 가운데 한 대목입니다. 검정물 세례를 받은 한 떡장수가 배알, 곧 심지나 정조까지야 검게 할 수는 없다고 민족감정을 토로한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백의에의 집념은 끈질기게 계속되어 왔습니다. 관련되는 내용은 아래를 참고하십시오.

..........................................................


이번에 새롭게 수집한 이 자료는 백의말살정책과 관련된 자료입니다. 흰 옷을 물들여 입으라는 일제 당국의 조치를 제시하면서 염료 광고를 하고 있는 전단지입니다.
(가로 13cm, 세로 18cm)

10월 10일부터 4월 말일까지

색의 착용

.백의는 경제적이지 못하니 반드시 색의를 착용합시다.
.상주는 해당 읍면장의 증명서를 휴대하시오.
. 기간중에 색의를 착용하지 아니하면 남의 앞에 나올 수 없소


조치원시장
우수염료 판매점 잡화상 남일양행
주인 이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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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건호


< 외국인이 본 한국, 한국인 >

(6) 흰 옷의 나라

조선을 찾은 외국인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한국인들이 입고 있는 흰 색의 옷이었다. 산에 올라가서 보았을 때, 마치 흰 눈이 쌓여있는 것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온통 거리를 뒤덮고 있던 흰 옷의 물결! 백의 민족이라는 표현이 그저 나온 게 아니었다.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대로에서 무엇보다도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사람들인데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하얗게 옷을 입은 모습은 이색적일 수 밖에 없다. (독일 기자 지그프리드 겐테 1901)

"바지 저고리는 물론 양말까지도 흰색으로 걸치고 천천히 활보하는 조선인들의 흰색 물결은 뭔가 매력적인 감흥을 느끼게 한다." (미국인 앤거스 해밀턴 『조선』1910년 )


"청색이 중국의 색이라고 한다면 흰색은 한국의 색이다. 조선의 고유 의상에서는 생동감이 넘치는 백옥 같은 밝은 흰색부터 광목처럼 거칠고 투박한 흰색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종류의 흰색을 만나게 된다. 따라서 조선의 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다양한 흰 옷 물결이 만들어 내는 조화는 마치 음색의 향연 그 자체인 것이다. 앞으로 세계 정세 속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지라도 조선 민족은 영원토록 백색 제국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프랑스인 드 라네지에르 1902)

"조선인들은 흰 옷을 즐겨 입는다. 이것은 동심 어린 조선인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다. 서울 거리는 어디를 가나 이러한 밝은 흰색 옷으로 인해 항상 축제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하며 조선인들도 이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만약 그들에게 흰 옷을 입지 못하게 한다면 쾌활함도 그만큼 반감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조국을 떠난 이국 땅에서도 흰 옷을 입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중국인들의 칙칙하고 짧은 조끼나 러시아인들의 투박한 외투 사이에서 조선인의 흰 옷은 유달리 발랄하게 눈에 띈다."
( 프랑스 여행가 듀크로크 [애처롭고 부드러운 조선] 1904년)

이렇게 우리 민족이 흰 옷을 즐겨 입은 것은 언제 부터일까?
<위지> 동이전 등 고대 중국 문헌에 따르면 부여인들은 흰 옷을 숭상하여 흰 베로 만든 소매가 큰 두루마기와 바지를 입었다. 이러한 풍습은 고구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국문헌에는 신라인들이 흰색 옷을 숭상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백제에 대해서도 의복이 청결하다는 점을 일부러 밝혀놓고 있다. 이로 미루어 흰 옷을 즐겨 입는 풍습은 조선시대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볼 수 있다. 고려 건국 초에는 흰 옷의 비경제성 때문에 동방색인 푸른 색 옷을 입어야 한다고 금령을 내렸지만, 백성들은 여전히 흰 옷을 입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국법 개혁에 가장 과감했던 조선의 태종도 '흰옷에만은 내가 졌다'고 손을 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 민족이 흰옷을 유난히 즐겨 입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있다. 밝고 깨끗하고 우아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의복 생활에 반영된 것이라는 주장, 의식 복장으로서 상복(喪服)의 영향으로 습성화되었다는 주장, 유채색의 옷을 입지 못하게 한 국가의 금령으로 인한 백성들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주장, 물감이 희귀하고 염료가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주장 등등. 그러나 그 이유야 어떻든 흰 색의 옷이 우리 민족의 성정에 맞았고, 우리 민족이 즐겨 입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도 한국인은 흰색의 옷을 선호하는가? 의식주의 생활 풍습은 오랜 역사 과정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되는 것으로 고정 불변의 생활 풍습은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100년 후 그때도 우리는 백의민족일까?

프랑스 캐주얼 브랜드 [라코스테]의 국내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주)서광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옷 색깔은 하얀색이다. 국내에 내놓은 45개 색상 라코스테 셔츠 중에서 지난해 판매율이 가장 높은 것이 [흰 색]으로 28.7%를 차지했다. 2위는 빨강 7%, 이어 하늘색(6.8%), 검정(6.4%), 밝은 핑크(6%), 짙은 청색(5%), 연두색(4.6%), 베이지색(4.4%), 노랑(2.7%) 순이었다. 이에 비해 유럽인은 짙은 청색(네이비 블루)를 즐겨 입는다.
(조선일보 97.5.27일자)


‘지구촌 가족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파란색.’
‘10인 10색’이라는 말이 있지만 나라와 민족이 달라도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색깔은 있다.
일본 ‘신(新)에너지 및 산업기술 종합개발기구’가 무사시노(武藏野)미술대에 의뢰해 24개국 5천3백명의 미술학도를 대상으로 ‘색의 국제적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파란색이 가장 인기있는 색깔로 나타났다. 47개 색깔을 제시하고 이 중 3개를 택하라는 질문에 한국 미국 일본 독일 등 무려 17개국에서 응답자들은 ‘자색(紫色)이 약간 포함된 파란색’을 1위로 꼽았다. 특히 파란색에 대한 선호가 독일에선 52%나 됐으며 미국은 33%, 일본은 31%였다. 이같은 파란색에서 ‘평화’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중국은 흰색을 가장 좋아했으며 러시아 포르투갈 싱가포르에서는 검은색이 1위였다. 또 색깔에서 느끼는 이미지와 관련해 붉은색에서는 ‘전쟁’을, 검은색에서는 ‘고독’을 떠올리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검은색을‘우아함’을 상징하는 색깔로 보는 답변도 많았다. 반면 한국과 일본에서‘우아’를 대표하는 색깔은 자색과 금색(金色)이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5가지 색깔은 파란색 흰색 붉은색 노란색 옅은 하늘색 순으로 조사됐다.
조사팀관계자는 “조사결과를 분석하면 색채감각의 결정요인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색채감각이 7할이며 기후와 문화 등 개별조건은 3할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동아일보 1998.11.23)

28.8%의 한국인은 옷을 살 때 검정색을 선호한다. 흰색을 선호하는 사람은 23.1%이다.
(대홍기획 마케팅전략 연구소 설문, 1999)

http://blog.joinsmsn.com/media/folderListSlide.asp?uid=kby54&folder=141&list_id=11777318


愛国志士の子孫シムジョンソプ氏は27日、日帝が戦争準備に狂奔し、"一般の人はもちろん、上(喪)を受けた人々に白い服(白衣)を着ることを制限する"という内容が盛り込まれた警告をゴンゲヘトです。光州(クァンジュ)=イヒョンジュ記者peneye09@donga.com


色衣着用 白衣禁物
警告文
◎着用期間 十月一日から翌年五月末日まで
◎染色 各?年齢????
◎着用者 男女全員着用
◎喪服人 ??十四日間外出
色衣着用喪章??
(?=不明瞭で字が判別できませんでした)

昭和一三年九月一日

礪山郡
礪山郡 農村振興委員会
礪山郡 振興舎?合会
礪山郡 雲峰囲農村振興委員会
礪山郡 振興??合????支部
礪山郡 雲峰?色衣着???会
礪山郡 雲峰画婦人会?合舎

Wear colored cloths, prohibit white cloth
Warning statement
◎ event period, from October 1 until the last day of May on next year.
◎ color dye, each age ?????(unclear)
◎ mourning ?? Forty days out
               Wear colored cloth with mourning badge
(?= Unclear character)
1 September 1938

Yeosan county
Yeosan county Rural Development Committee
Yeosan county ?? Industry Association
Yeosan county  village of Mine Promotion Committee 囲農 礪山
Yeosan county County 礪山 promotion? ? Case? ? ? ? Branch
Yeosan county Guleumbong-uli wearing colored clothing ? ? ? association
Yeosan county Guleumbong-uli women's association


(mochi) it is citizens campaign...........


シムジョンソプ氏が公開した白い服(白衣)着用の禁止警告文は、日帝が中 - 日戦争を起こした直後の1938年に製作したのだ。警告の発行機関は、行政機関と親日御用団体はもちろん、ミョンダンウィ組織まで参加し、緻密な日帝の民族抹殺政策をそっくりそのまま見せている。光州(クァンジュ)=イヒョンジュ記者peneye09@donga.com


2010-08-28 13:38:54조회 (16) | 추천 (0) | 퍼간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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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喪中에도 흰옷 금지’ 일제 민족말살 문서 공개

2010-08-28 03:00 2010-08-28 03:00
심정섭씨 ‘백의 금물, 색의 착용’ 경고문 입수
1938년 발행… 일상생활까지 노골적 통제 입증

애국지사 후손 심정섭 씨는 27일 일제가 전쟁 준비에 광분하면서 “일반인은 물론 상(喪)을 당한 사람들까지 흰옷(백의) 입는 것을 제한한다”는 내용이 담긴 경고문을 공개했 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백의는 금물(禁物)이오. 색의(色衣)를 착용하시오.’ 일제강점기인 1938년 9월 1일 조선총독부의 지시로 충남 예산군 등이 발행해 배포한 경고문에 담긴 문구다. 경고문에는 심지어 상(喪)을 당한 사람조차 흰옷을 입는 것을 제한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일제가 전쟁 강제동원을 본격화하면서 우리 민족의 상징인 흰옷을 입지 못하게 하는 등 철저한 민족 말살정책을 자행했음을 뒷받침하는 경고문이 27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가로 25.2cm, 세로 18cm 크기의 전단인 이 경고문에서 일제는 흰옷 대신 염색을 한 옷을 입고 다녀야 하며, 대상은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상을 당한 사람들이 상가를 벗어날 때는 흰옷을 입는 것을 금지하고 그 대신 상을 당했다는 표시를 부착하라는 황당한 명령이 적혀 있다.

상하이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한 백강 조경한 선생의 외손자이자, 구한말 의병 주촌 심의선 선생의 증손자인 심정섭 씨(67·광주 북구 매곡동)는 이날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앞두고 동아일보에 이 경고문을 공개했다. 1959년 고교 1학년 시절부터 50년이 넘게 독립운동이나 친일행위와 관련된 자료를 모아온 심 씨는 올 3월경 대전의 한 고물상에서 이 경고문을 입수했다.

조선총독부는 중-일 전쟁을 일으킨 뒤인 1937년 12월경 “조선인들이 흰옷을 입고 음력설을 쇠는 것을 없애라”고 전국 행정기관에 지시했다. 이 경고문은 각 행정기관이 치밀하게 흰옷 착용금지 정책을 강요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다. 일제는 흰옷 착용금지 강요 이후 신사참배나 창씨개명 등 각종 민족 말살정책을 더 노골화했다. 조범래 독립기념관 학예실장은 “이 경고문은 처음 공개되는 것”이라며 “일제가 전쟁 강제동원 준비를 본격화하면서 생활 속 민족문화까지 말살하려 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심정섭 씨가 공개한 흰옷(백의) 착용 금지경고문은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킨 직후인 1938년 제작한 것이다. 경고문 발행기관에는 행정기관과 친일어용단체는 물론 면단위 조직까지 참가해 치밀했던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경고문을 공개한 심 씨는 일제가 군용기 제작비용 헌납을 홍보하는 전단도 함께 공개했다. 심 씨가 50여 년 동안 모은 자료는 현재까지 5000여 점에 이른다. 광주에서 국어교사로 일해온 심 씨는 틈나는 대로 자료를 구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월급의 상당 부분을 귀한 자료를 사들이는 데 털어 넣는 바람에 아내 김영남 씨(63)가 10여 년간 파출부 일을 하기도 했다. 2004년 광주 송원여자정보고 교감을 끝으로 교단에서 물러난 뒤에는 독립운동과 친일자료집 4권을 펴냈고 내년에는 5번째 자료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심 씨는 “민족정기를 회복하는 데 작은 보탬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독립운동 자료 등을 50여 년간 수집해 왔다”며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 그동안 모은 자료를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喪中でも白い服の禁止"日帝の民族抹殺文書公開
心情摂氏"白衣禁物、色の着用"警告入手
1938年に発行日常生活まで露骨に統制を証明

1938年発行...日常生活まで露骨な統制を証明""白衣は禁物(禁物)。色(色衣)を着用すること。"

白衣は禁物(禁物)イオ。色(色衣)を着用すること。" 日帝強占機1938年9月1日、朝鮮総督府の指示で、忠清南道礼山郡などが発行して展開している警告文に込められた言葉だ。警告には、さらに上(?)を受けた人々さえ白い服を着せることを制限する内容が含まれている"

日帝が戦争の強制動員を本格化し、我々の民族の象徴である白い服を着ないようにするなど、徹底した民族抹殺政策を強行したことを裏付けるして、警告が27日、初めて公開された。横25.2cm、縦18cm大きさの前段である、この警告では、日帝は白い服の代わりに染色をした服を着て通わなければならないし、対象は老若男女を区別しないと釘を刺した。賞を受賞された人々が商店街を出るときは、白い服を着ることを禁止し、代わりに賞されたという印を付けするように不合理な命令が書かれている。

上海臨時政府の国務委員を歴任したベクガンつくった先生の外孫であり、旧韓末の義兵ジュチョンシムウイソン先生の曾孫であるシムジョンソプさん(67 ・ 光州北欧メゴクドン)はこの日、韓日強制併合100年を控え、東亜(トンア)日報には、警告を公開した。1959年高校1年生の頃から50年以上の独立運動や親日行為に関する資料を集めてきた心さんは今年3月ごろ大田のある道具屋では、この警告を入手した。

朝鮮総督府は、中-日戦争を起こした後の1937年12月ごろ、"朝鮮人たちが白い服を着て旧正月を具を避けよ"と全国の行政機関に指示した。この警告は、各行政機関が緻密に白い服着用禁止政策を強要したということを立証する資料だ。日帝は、白い服着用禁止強要以降宮参り倍に創氏改名など様々な民族抹殺政策を露骨化している。ジョボムレ独立記念館学芸室長は、"この警告は、初めて公開される"とし"日帝が戦争の強制動員の準備を本格化し、生活の中の民族の文化まで抹殺しようとしたようだ"と評価した。

警告を公開したシム氏は、日帝が軍用機の製造コストの貢献を促進するためのリーフレットも一緒に公開した。シム氏が50余年の間に集められたデータは、現在まで5000余点にのぼる。広州での国語の教師として働いてきたシム氏は、暇が出来次第のデータを救うために全国の津々浦々を歩き回った。給料のかなりの部分を大事な資料を買うのにはたいて入れたことで、妻の金永南(キムヨンナム)さん(63)が10余年間、家政婦の仕事をしたりもした。2004年の光州松原女チョン見て共感を最後に教壇を退いた後には独立運動と親日資料集4冊ピョネトゴ、来年には5番目の資料集を発刊する予定だ。シム氏は"民族の精気を回復するために小さな足しにもなることを願う心の独立運動の資料など、50余年間、収集してきた"とし"再び国を奪われることがあっては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これまで集めたデータを一つ一つ整理している"と話した。光州(クァンジュ)=イヒョンジュ記者
http://d.hatena.ne.jp/boutarou/20050810/1123672857


( ´∀` ) Korean claim that imperial japan exploited from korean Peninsula as well, but watching these pictures, finding some electricity poles, nice buildings,people wearing high quality clothes."
「...日帝は朝鮮半島を搾取したとよくいいますけど,この写真をみると電柱があって、良い建物が立ってて、良い服着てますね。」
「 ... 일제는 한반도(朝鮮半島)를 착취했다고 자주(잘) 하지만, 이 사진을 보면 전주가 있어서, 좋은 건물이 세워지고 있어서, 좋은 옷 입고 있네요. 」

∩#`Д´>'') white cloth is symbol of white folk nida!!
「白い服は白衣民族の象徴ニダ!」
「 흰 옷은 백의민족의 상징【니다】! 」 

( ´∀` ) the symbol of the nation as White dress coat? why "Daejanggeum" stages in royal court from the late 15th century to early 16th century, maids wear hole of colored costumes in the historical drama.... What is big lie lol
「白衣民族の象徴である白い服?15世紀末から16世紀前半の宮廷女官を舞台にした『チャングムの誓い』というドラマ。あの歴史ドラマじゃ色つき衣装ばっかのくせに...大嘘ってことになるよね。w」

「백의민족의 상징인 흰 옷? 15세기말로부터 16세기 전반의 궁정궁녀를 무대로 한 『대장금』이라고 하는 드라마. 저 역사 드라마는 색 첨부(달) 의상ばっ인가의 주제에 ... 큰 거짓말 말야 것이 되어요. w」


∩#`Д´>'') that's evidence that Japanese Imperialism and the minions;  Chinilpa(pro-Japanese) forced the policy unfairly as "Turning white robe","encourage colored clothes", and tried to kill our white coat culture Nida!
「日帝とその手先であるイルパ(親日派)が「白衣退散」、「色服奨励」政策を押し進めて「白衣文化」を不当に抹殺しようとした証拠ニダ!」


( ´∀` ) "Let's assume that the policies was for the Korean Government-General of japan in this campaign. What institutional status as white clothes in Korea at all...."
「このキャンペーンが朝鮮総督府による政策であると仮定したとしましょう。そもそも朝鮮の身分制度において白い服って...」
「 이 캠페인이 조선 총독부에 의한 정책이다라고 가정했다로 합시다. 처음부터 조선의 신분제도에 있어서 흰 옷 말야 ... 」

朝鮮の身分制度

(1)両班…説明不要。時代が下るにつれて名前だけの「両班」が恐ろしく増殖。
(2)中人…役人や両班の庶子など。
(3)胥吏…下級官吏、世襲の賤民とも言える。
(4)常民…一般人 。普通の庶民で 農業、工業、商業を営むもの 学ぶことは禁止で科挙の受験資格がありませんでした。 漢城内での夜間外出は禁じられ違反すると厳罰がありました。 衣服も白のみで 家屋は門を作ることが禁止
(5)賤民…白丁・芸人(芸だけでなく、文字通りゲイも…)・巫覡・仏教僧尼(儒教社会だからね) ・喪輿軍(葬儀関係)・妓生(公的な婢。公的な売春が有名だが、歌舞音曲、針線婢・医女等々)・奴婢(公私の奴隷)


1.両班 yangban 양반 (兩班); noble ruling class
Never explain.horribly increasing "yangban" just as name down the age.
2.中人 chungin
bastard child of officials and noblemen.
3.胥吏 shori
lower-level official, also can be said as hereditary  underclass 賤民

4.常民 sangmin
average people. they were ordinary citizens, worked in agriculture, industry, commerce,but be prohibited learning, didn't have the qualification for imperial examination. charged curfew outside of Hansunbu (한성부漢城府),to severe punishments.Only permitted wearing white cloth,also prohibited to build the gate on front of house.

5.賎民 chunmin
baekjeong (백정);untouchable people,entertainer (not just the arts, gay in the literature) ,mediumistic shaman mudan, female Buddhist monk (because in Confucianism society ,(funeral relationship),gravedigger,carrying casket,Kisaeng (public slave, its famous that public prostitution,included musician,dancer, midinette, Medicine woman etc), public and private  slave servants.

喪輿軍(喪輿担ぎ、葬式人夫)

class system in Joseon dynasty

両班 yangban 양반 (兩班)
中人 중인 (chungin)
常民 상민 (sangmin)
賎民 (chunmin, Cheonmin 中文;賎民
〔for example, 奴婢 노비 nobi , 巫堂 (mudang) or 白丁  백정 (baekjeong) 中文;白丁)
Among these, a monk belonged to 賎民 (the social pariah) in the Joseon era. For Buddhists around the world, Korea is the object of contempt because of the Joseon's crackdown on Buddhism.

賎民 included 軍妓 军妓 군여자 군기생 or 辺妓. These are certain kinds? of comfort women, and a monk was equated with those lower classes. In all kinds of occupations, the position situated below a monk was only 白丁 (baekjeong).
中人(チュンイン)は、李氏朝鮮の官僚階級で、両班と常民間に入る階級である。文班でも武班でもない雑科(翻訳、通訳-日本語、女真語、中国語-、医術、天文学など)を専門に執り行う官僚であり、ほぼ世襲された。数が少ない為、身分制度の数に入れない場合もある。 quotes from三日月城通信

조선의 신분제도

(1)량 반…설명 불필요. 시대가 지남에 따라서 이름만의 「양반」이 무섭게 증식.
(2)중인…역인이나 양반의 서자등.
(3)胥관리…하급 관리, 세습의 천민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4)상민…일반인. 보통 서민에서 농업, 공업, 상업을 경영하는 것 배우는 것은 금지로 과거의 수험 자격이 없었습니다.  간(漢) 기우치(城內)에서의 야간 외출은 금지되어 위반하면 엄벌이 있었습니다.  의복도 흰만으로 가옥은 문을 만드는 것이 금지, (5)천민…흰정·연예인(기예뿐만 아니라, 문자 그대로 게이도 …)·巫覡·불교승니(유교사회이기 때문에요) ·상가마군 (장례식관계)·기생 (공적인 婢. 공적인 매춘이 유명하지만, 가무음곡, 바늘선婢·의여자등등)·노비(공사의 노예)



( ´∀` )"Thus, white cloth was for low birth people like sangmin;average people or baekjeong; untouchable people. the reporter seems to hater who wants returning to the status society."
「このように,常民や白丁など身分の低い者が着るものでしたね。この記者は身分社会に戻せという差別主義者ですね。」

「 이와 같이, 상민이나 흰정등 신분이 낮은 사람이 입는 것이었네요. 이 기자는 신분사회에 돌려줘라고 하는 차별 주의자이네요. 」


∩#`Д´>'')"that is picture shown campaign the slogan that conducted off our white clothes, wear colored dress  around 1932, NIDA!"
「1932年ごろ行われた 『白い服を脱いで、色付きの服を着よう』というスローガンのキャンペーンの写真ニダ!」

「1932년경 행하여진 『흰 옷을 벗고, 물이 들기의 옷을 입자』라고 하는 슬로건의 캠페인의 사진【니다】! 」



( ´∀` )"hoho, its a photo around 1932 (showa 7th year)."
「ほう,1932年(昭和7年)ごろの写真なのですね。」
「붕새, 1932년(쇼와(昭和)7년)경의 사진이네요. 」


昭和14年度(1939年) 満鮮修学旅行記 文科四年
どこの家でも真白な洗濯物がひつかけてある。鮮人は洗濯が好きで小さい水溜りでも見つければするといふ。白い衣服は夏は殊に見る眼に快い。そしてその丸味のある単調なふくらみ は茅葺の屋根の線にも共通にあるものだ。木の育ちかけた山にも女の顔にもそれはみつけら れる。朝鮮のもつ一つの感じであり、自然と人との融合の、知らぬ間に微妙になされてゐる のが何となく心を温めほゝゑました。

日帝時代の日常の1コマ。


in 1939 (Showa 14th year) records of school trip to Korea, literature dep.fourth-year student

anywhere chested with white laundries over home. it is said that Koreans love washing, if they find even small puddle,they would wash. Summer white clothes look especially pleasing to the eye. Monotonous round bulge and common line is existed in the thatch roof. It can be also found in the face of woman, a tree grows in the mountains. Korea has another  depression feeling, a fusion of nature and people, its smiling and warming my heart somehow that mix together insidiously subtle.

the scene of the day in Japanese colonial era.


쇼와(昭和)14년도(1939년)조선 수학 여행기 문과 4년

어느 집에서도 새하얀 빨래가 걸려들게 해 있다. 조선인은 세탁을 좋아해서, 작은 물 웅덩이라도 찾을 수 있어, 곧 세탁하기 시작한다. 흰 의복은 여름은 특히 눈에 기분 좋다. 그리고 그 너그러움이 있는 단조로운 부풀어 커지기는 새지붕(茅葺)의 지붕의 선에도 공통이게 있는 것이다. 나무의 자라기 시작했던 산에도, 여자의 얼굴에도 그것은 발견할 수 있다.
조선의도 치는 하나의 느낌이며, 자연과인과의 융합의, 모르는 사이에 미묘하게 협조하고 있는 것이 어쩐지 마음을 따뜻하게 해 흐뭇하다.

일제시대의 일상의 1코마.



( ´∀` )"aw, I can see how you are washing white clothes in 1939"
「あれ,1939年に白い服を洗濯している様子が見られますけどw」

「저것, 1939년에 흰 옷을 세탁하고 있는 모양이 보여지지만 w」



∩#`Д´>'')"in a secondhand bookstore of Nagoya, i  took about 200 photos with this photo in the book "Industrial Promotion" which listed a lot of pictures related to Korea  Nida!!
(mochi thinking...at first buy the book....poor secondhand bookstore's master...)
「名古屋の古本屋で、韓国関連の写真がたくさん掲載されている 「産業奨励」という本の中から、この写真とともに約200枚の写真を撮影したニダ!」

「나고야(名古屋)의 헌 책방에서, 한국 관련의 사진이 많이 게재되고 있는 「산업장려」라고 하는 책 안(속)에서, 이 사진과 함께 약200장의 사진을 촬영한 【니다】! 」



( ´∀` ) "Excuse me, there is intention to "encourage" industrial, then it is slogan on the business what let you buy over colored or dyed.
Japan Government-General of Korea didn't provide the direction,it was voluntary exercise  as well as renamed (Soshi kaimei)..
Besides, that the "photos" are not taken by Mr.Chon Songiru,simply copied only. if the original photo is taken in the book of "Industrial Promotion" ,there should be also "the description for picture" .
why you don't write the description, only cut the photo? nice self-serving interpretation,typical Korean "

「あの,『産業奨励』という意図があるということは,色つきの染物とかそっちを買ってもらおうと言う商売上のスローガンではないですか?朝鮮総督府が指導したわけではなく、 改名同様、自発的な運動だったのでは…。それに,この「写真」は鄭成吉氏が撮影したものではなく,単に複写しただけであり,オリジナルの「写真」が「産業奨励」という本に載っていたということは、オリジナルの「写真説明」もその本に載っているはずですよ。その写真説明を記事に書かないで,写真だけ切り出して都合のいい解釈。典型的ですねw」
「 저, 『산업장려』라고 하는 의도가 있다고 하는 것은, 색 첨부(달)의 염색물이라든가 그 쪽을 사게 하자라고 말하는 상거래상의 슬로건이 아닙니까? 조선 총독부가 지도한 것은 아니고, 개명 같이 자발적인 운동이고서는 …. 거기에, 이 「사진」은 정(鄭) 시게요시(成吉)씨가 촬영한 것이 아니고, 단지 복사한 것 뿐이며, 오리지날인 「사진」이 「산업장려」라고 하는 책에 실려 있었다고 하는 것은, 오리지날인 「사진설명」도 그 책에 실려 있다에요. 그 사진설명을 기사에 쓰지 않고, 사진만 자르기 시작해서 편리한 해석. 전형적이네요 w」


【「日帝36年」の罪】

★日本が朝鮮にマッチを持ち込み普及させた。これによって 朝鮮の火災が増え、罪の無い人々が焼死した。
★日本が「円」を持ち込んだ。それまでは買い物をするときには貨幣の運搬のために馬と馬子を雇っていた。
「円」や「ドル」が通用するようになって馬子が失業した。これが現在なら 当然 失業補償をすべきである。
(一ドルが穴あき銭3200枚と交換されていた。鹿の角は高価で一対40ドルから60ドルていど。)
★日本人はソウルに 二階以上の建物を建てた。それによって ソウルの見晴らしが悪くなった。
★ソウルに大学を創った。現在の韓国の学歴偏重の弊害の原点はここにある。
★朝鮮に道路や橋を整備し侵略を容易にするとともに「風水」を壊した。
★日本人は衣服に色をつけることを教え、朝鮮の白衣文化を奪った。<NEW><丶`∀´>
★日本は政府に圧力をかけ睾丸の腐割を禁止させ、性転換の自由を奪った。
★初潮前の少女を妓生とすることを禁じロリコンの楽しみを奪った。
★寡婦の再婚を許可し不倫を横行させた。
★病気の治療のための呪詛を禁止し、宗教の自由を奪った。
★再就職の難しい宦官を失業させた。(当時はおかまバーも失業保険も無かった。)
(「男寺党」と呼ばれる男ばかりの芸能集団が有ったが、年寄りは就職できない。)
★白丁(被差別者)に笠をかぶせることを禁じ、笠屋の利益が減少した。
★奴婢の解放により 両班に反感をもたせた。
★女性にも名をつけることを奨め儒教の教えを蔑ろにした。
★近代的デモを教え、それまでの「殺人契」「香徒契」のような両班に対する 財産の奪取、婦女子の強姦の楽しみを無くした。(日本が侵略する以前は三・一デモのようなものは無かった。)
★皮革産業を普及させ動物を虐待した。
ごめんなさい、ごめんなさい、ごめんなさい、、、



the sins of 36 years of Japanese colonial rule

★ Japan brought and allowed to spread match in Korea.
therefore fire was increased in korea, innocent people were burned to death.

★ japan brought "Yen"
Until then, when go to shop, needed to hire a horse and packhorse driver for transporting money.
since "$" or "Yen" has been distributed,  packhorse lost his job.
nowadays,unemployment should be compensable,if the course.
(exchanged as 1$=3200 sen donuts coins.
a pair of deer horn was exchanged about $40~60,it were expensive)


★ Japanese built the building which has second or more floor in Seoul.
View of Seoul had become bad by it.

★ Created the University of Seoul.
The origin of the evils that current Korean diplomaism is here.

★ maintained the roads and bridges in Korea to facilitate invasion, Broken "feng shui"
★ Japan taught to add colors for clothes, and deprived Korean white clothes  culture.<NEW><丶`∀´>
★ Japan forced government and prohibited eunuch, addle and breaking his testicle. took the freedom of sex change.
Took up the fun of pedophile forbids the pepper and the girl before menarche.
★ forbidden the girl before menarche to be a kisaeng, and took the fun from pedophile.
★ allowed remarriage for widows, rampanted illicit love.
★ Prohibited the curse for treatment of disease, bun and took the freedom of religion.

★ forced re-employment difficulty eunuch to be unemployed.
(At that time there was no  transvestite bar, unemployment insurance. there was a group called "Namsadang."; men's temple group of entertainment agency. Old was not a job)
★ Forbidden to put a straw or bamboo hat for discrimination  Baekjeong, the benefits of hat shop was forced to reduce.

★ get remembering the antipathy to Yangban by the release of servants.
★ ignored the teachings of Confucianism, by recommended to name for women.
★ teaching what is the modern demo, dash the property for Yangban, had lost the fun such as rape women or children",until regulated the killing group "Saringe; contract murder""or "Hyange"
(Formerly Japan invasion, there was no peaceful demonstration like as 3.1 movement)
★ dispersed leather industry, cruel to animals.

I'm sorry, I'm sorry, i am really sorry,,,,,,, ...


【「일제36년」의 죄】


★일본이 조선에 매치를 가져와 보급되게 했다. 이것에 의해 조선의 화재가 늘어나고, 죄가 없는 사람들이 타 죽었다.
★일본이 「엔」을 가져왔다. 그것까지는 쇼핑을 할 때에는 화폐의 운반을 위해서 말과 마부를 고용하고 있었다.
「엔」이나 「달러」가 통용되게 되어서 마부가 실업했다. 이것이 현재라면 당연 실업 보상을 해야 한다.
(1달러가 구멍 텅 비어 있음 전 3200장과 교환되고 있었다. 사슴의 모서리(뿔)은 고가이어서 한 벌 40달러로부터 60달러て있어ど. )
★일본인은 서울에 이층이상의 건물을 세웠다. 그것에 의해서 서울의 전망이 나빠졌다.
★서울에 대학을 만들었다. 현재의 한국의 학력편중의 폐해의 원점은 여기 있다.
★조선에 도로나 다리를 정비해 침략을 쉽게 하는 동시에 「풍수」를 파괴했다.
★일본인은 의복에 사례하는 것을 가르치고, 조선의 백의문화를 빼앗았다. <NEW> <⊙`∀´>★일본은 정부에 압력을 가해 고환의 腐할을 금지시켜, 성전환의 자유를 빼앗았다.
★첫월경전의 소녀를 기생으로 하는 것을 금해 로리콘(Lolita complex)의 즐거움을 빼앗았다.
★과부의 재혼을 허가해 불륜을 횡행한게 했다.
★ 병든 치료를 위한 저주를 금지하고, 종교의 자유를 빼앗았다.
★재취직이 어려운 환관을 실업시켰다. (당시는 솥 바도 실업보험도 없었다. )
(「남자절당」이라고 불리는 남자만의 예능집단이 있었지만, 노인은 취직할 수 없다. )
★흰정(피차별자)에 갓을 씌우는 것을 금하고, 갓집의 이익이 감소했다.
★노비의 해방에 의해 양반에 반감을 가지게 했다.
★여성에게도 이름을 붙이는 것을 권장해 유교의 가르침을 소홀하게 했다.
★근대적 데모를 가르치고, 그것까지의 「살인약속」 「향기헛됨약속」과 같은 양반에 대한 재산의 탈취, 부녀자의 강간의 즐거움을 없앴다. (일본이 침략하는 이전에는 3·1데모와 같은 것은 없었다. )
★피혁산업을 보급되게 해 동물을 학대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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